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ad38

[한겨울 산티아고 순례길 7]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포도주

기사승인 2016.12.09  07:22:36

공유

까미노를 위해 생긴 마을 아름다운 에스텔라에서 하루를 쉬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제, 발에 잡힌 물집에 대규모의 바느질(!)을 하고 패드를 붙였더니 한결 편하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에스텔라를 출발해 곧 만나게 되는 이라체 수도원은 까미노의 친절함을 잘 보여줍니다.

중세에 순례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던 풍습이 오늘까지 이어져 이곳에는 수도꼭지가 두개인 샘이 있습니다. 한 곳에는 물이 나오고 또 다른 곳에서는 포도주가 나오지요.

포도주는 하루에 100L까지 제공이 된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없는 겨울이라 나는 물통을 비우고 포도주를 가득 채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음주보행입니다.

한참 길을 가다가 잠시 쉬기 위해 앉아 있는데 참 좋습니다. 12월인데도 봄 같은 스페인 나바라 들판에 햇살을 받으며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내가 신기하구요. 신발에 양말까지 벗고 앉아 있으니 날아갈 것 같습니다.

발이 아프지 않다니요! 앉아 있는 것이 이리 좋은 건지 미처 몰랐습니다. 플럼 빌리지에서 좌선을 할 때는 다리가 저리도록 앉아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요.

삶의 기쁨은 이렇게 사소한 곳에 있습니다. 게다가 이 고요한 들판에 멋진 도반과 둘이서 길을 가는 행운은 기적이 분명합니다.

암요, 기적입니다.

함께 길을 걷던 작은 희연 씨가 에스텔라에서 하루를 더 머무르면서 쉬고 싶다고 남는 바람에, 이제 큰 희연 씨와 둘이서 걷는 길입니다.

그렇게 오후로 기울어 가는 햇살과 바람 아래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 맛은 까미노의 기쁨 가운데 하나입니다.

게다가 20km를 넘게 걷도록 식당 한 곳 만나지 못해 결국 ‘자연과 함께(노상방뇨)’를 위해 멀리 다녀오는 그녀는 "천국이 따로 없다"고 깬소리를 합니다.

그렇죠. 천국이 어디 있을까요? 지금을 만나는 여기가 천국이지요. 해본 사람만이 압니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default_news_ad2

도착한 로스 아르코스는 스페인의 옛 나바라 왕국과 까스띠아 국경 지대로 절충지의 역할을 했고 까미노로 15세기와 16세기에 번성했던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발이 많이 상해 역시 오후가 되니 힘들어져 쉬고 싶은 마음도 많지만, 겨울철이라 알베르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를 마친 후 만나는 기쁨과 감격이 있지요.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나니 물집이 터진 발에서 열이 많이 나서 혹시 감염이 되지 않을까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런데 마침 로스 아르코스 알베르게에 한국인 자원봉사자가 있어 항생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들 염려해주고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고요. 모두가 고마울 뿐입니다.

병원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지만 병원에 가면 걷지 못하게 할 텐데 그건 나도 아는 일,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디며 한 걸음씩 가보기로 합니다.

인조이 더 브레스!(Enjoy the Breath!)

인조이 더 로드!(Enjoy the Road!)

인조이 더 라이프!(Enjoy the Life!)

(20151203 #산티아고 7일 640.5km 에스텔라 - 로스 아르코스)


오동성 eastsain@chol.com

<저작권자 © 미디어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오동성 eastsain@chol.com

목사, 2004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해 목회와 공동체 일을 해왔고 지금은 토론토의 한인 양로원에서 어르신들의 노년을 섬기며 여행과 명상, 일상생활을 통해 길 위에서 하늘을 보고 나를 찾아가는 안내를 하며,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과 함께 유가족과 연대하여 세월호 진상규명과 그를 통한 안전한 사회를 세우는 일에 힘을 다하고 있다.
· 저서 : 지금 여기 그리고 당신과 함께, 다른 우리
· 역서 : 칼릴 지브란 예언자, 나마스테
https://www.facebook.com/eastsain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nd_ad6
default_side_ad4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