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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도스’의 고향 옹플뢰르에 가다

기사승인 2016.12.12  10: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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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왔을 때 꼭 마시고 싶었던 것은 와인도 아니고, 코냑도 아닌 ‘칼바도스’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었을 때 “그리스에 가면 꼭 ‘우조’를 마셔야지”, 뤽 베송 감독의 <그랑블루>를 보았을 때 “이탈리아에 가면 꼭 ‘스파게티’를 먹어야지” 했던 것처럼 영화나 책 속의 음식과 술이 뇌리에 깊이 새겨질 때가 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맛본 ‘우조’는 향이 입에 맞지 않았고, 스파게티는 면이 덜 삶아져서 나왔다. 면을 푹 삶는 프랑스식 스파게티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입에 맞지 않는 게 당연했다.

‘칼바도스’는 에리히 레마르크가 쓴 《개선문》에서 주인공 라빅이 자주 마시던 술이다. 꽤 인상이 깊어서 꼭 마셔보리라고 별렀다. 망명자들의 불안하고 우울한 삶이 농축되어 있는 칼바도스는 파리에서는 찾기 어려웠고, ‘옹플뢰르 (Honfleur)’라는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이 칼바도스의 원산지였던 것이다.

옹플뢰르는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가 있는 도시이자, 고급휴양지인 도빌에서 가까운 곳으로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코끼리 바위로 유명한 에트르타와 함께 꼭 안내해 주는 곳이다. 옹플뢰르는, 프랑스에서 살고 싶은 곳을 말하라면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발이 열리는 안시와 함께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옹플뢰르는 칼바도스의 고향이자 음악가 에릭 사티의 고향이며 <악의 꽃> 보들레르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도빌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구릉은 온통 사과밭으로 봄에는 환한 꽃잎이 바람을 따라 춤을 춘다. 이곳에서 딴 사과로 만든 2°~5°의 사과주는 시드르라 부르고, 40°~45°의 매우 드라이한 사과향기의 브랜디는 칼바도스라고 불린다. 루비딕은 코냑보다는 싸서 하층민들이 주로 마시던 칼바도스로 전쟁의 암울함을 견디었던 것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작은 항구에 정박해 있는 요트와 배가 바다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옛날에는 미지의 신세계를 찾아 출항하던 곳이다. 17~19세기에 캐나다와 서인도제도, 아프리카로 떠나는 배들의 중심 항구로, 1608년 사무엘 드 창플랑도 이곳에서 출항해 퀘벡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옹플뢰르는 상업의 중심으로 성장한다.

포구를 따라 시간에 낡아갈수록 정취가 더해지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감싸고 있다. 한 폭의 그림이란 말이 이럴 때 쓰이는구나 싶게 아름답다. 19세기 말에 옹플뢰르의 아름다움을 담기 시작한 화가가 있었다. 이곳에서 태어난 인상파의 선구자 외젠 부댕이 작업실이 아닌 옥외에서 빛을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부댕의 명성을 따라 파리에서 모네, 피사로, 르느와르, 시슬리 등 인상파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러 찾아왔다. 외젠은 모네의 스승으로 빛을 보는 시선을 가르쳐주었고, 다른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때부터 옹플뢰르는 예술의 마을로 자리 잡게 되었다. 화가들이 사랑한 도시의 흔적은 골목길을 따라 난 갤러리와 아틀리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보들레르도 그의 어머니가 노년을 옹플레르의 한 별장에서 지낼 때 자주 들렸으며, 항구에 대한 시들을 썼다.

옹플뢰르에는 떡갈나무를 이용해 지은 목조건물들이 많다. 생트 카트린 성당과 종탑이 대표적이다. 성당은 목재로만 지어져서 우아한 노부인의 품위와 따스함이 감돈다. 햇살이 스며드는 창문들 앞에 앉아 있으면 가슴 가득 평화가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배를 건조하던 선원목수들이 지은 성당으로, 목수들은 ‘도끼의 달인’이라 불릴 정도의 장인들이었다. 항구 주변의 노트르담성당, 소금창고, 생 레오나르 교회, 구총독관 등은 물론 골목길을 따라 목수와 선원들이 살았던 목조 가옥들이 보존이 잘되어 옹플뢰르를 방문하는 기쁨을 더해준다.

항구 옆의 해변에는 에릭 사티의 생가 있다. 파리의 국립음악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12살 때까지 살던 집이다. 사티는 14세 때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했다가 다시 재입학을 한 뒤,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으로 작곡 공부를 했다. 예술이 돈으로 계산되는 것이 싫어서 작품을 팔지도 않았으며, 인정을 받기위해 타협하는 대신 몽마르트의 카페에서 피아노 연주로 생계를 유지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사티는 젊은 시절 모델이자 화가였던 수잔 발라동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5개월 동안 동거를 하던 수잔이 자신과 싸우고 창문으로 뛰어 내려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생겼다. 큰 충격을 받은 사티는 그녀와 헤어진 뒤 다시는 여자를 사귀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수잔 발라동을 그리워했다. 사티가 죽은 후에 아파트에 남겨져 있던 것은 수잔 발라동이 그려준 사티와 사티가 그려준 수잔의 그림이었다.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사티는 외롭고 고독한 생활을 하며, 당시의 음악조류였던 후기 낭만주의나 표현주의와는 다른 자신만의 음악을 작곡했다. 사티는 자신의 음악을 ‘가구음악’이라 이름 붙이고는 음악이 가구처럼 배경음악으로 존재하기를 바랐다. 사티만의 서정적 분위기에 신비함과 명상적 느낌을 주는 독창적인 선율은, 그의 생전에는 세상의 조롱거리였지만 백년 후에는 현대 음악의 문을 연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개선문’의 주인공 루비딕이 사랑하는 여인 조앙에게 했던 말이 평생 한 여자를 사랑했던 사티와 겹쳐진다.

"당신은 나를 살아 있게 해 주었어. 나는 그냥 돌멩이에 지나지 않았어. 그런데 당신이 나를 살아 있게 해 주었어……. (…) 조앙,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충분치 않아. 강물 속 아주 작은 부분, 물 한 방울, 나뭇잎 하나밖에 되지 않아. 사랑은 훨씬 더 큰 거야……."

옹플뢰르의 노천카페에서 고독, 불안, 우울, 사랑, 배신 등이 혼합되어 진한 사과향으로 피어나는 칼바도스를 마셔보면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를 살아있게 하는 사랑을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조미진 mijin6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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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진 mijin68@gmail.com

실수쟁이로 삶에 서툴지만, 사람을 좋아하며 노마드처럼 살기를…이방인으로 사는 것을 사랑하며 바람이 부르는 대로 살려고 한다.
저서<프랑스에서 한국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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