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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다이어리7] 올드카를 타면 쿠바가 보인다

기사승인 2016.12.12  12: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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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종종 기적을 낳는다.”
쿠바에 머무는 동안 여러 번 되뇐 말이다. 특히 아바나에서 카리브해를 따라 길게 이어진 말레콘(El Malecón, 방파제라는 뜻이지만 고유명사로 쓰인다)을 타고 묵직한 엔진소리를 내뿜으며 달리는 올드카를 볼 때마다 떠오르고는 했던 말이다.

쿠바를 상징하는 것들은 헤아리기 숨찰 만큼 많다. 시가, 럼, 살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체 게바라, 헤밍웨이, 사탕수수밭, 카리브해의 오묘한 물빛…. 하지만 올드카를 빼놓으면 밤새 남의 상가에 가서 운 꼴이 된다. 아바나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그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올드카, 즉 클래식카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바나의 풍경을 묘사할 때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도시’라고 쓰고는 하는데, 굳이 또 하나의 수식어를 내놓으라면 당연히 ‘움직이는 자동차 박물관’ 혹은 ‘뚜껑이 열린 타임캡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바나 시내를 지나다 보면 1950~70년대에 생산된 클래식카들이 마치 엊그제 출고된 신형 자동차 같은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며 거리를 누빈다. 그중엔 엄청난 크기의 캐딜락도 있다. 오픈카를 몰고 가는 사내들의 그 자랑스런 표정이라니. 솔직히 말하면 좀 부럽긴 하다. 도색을 못해서 폐차장에서 꺼내온 것처럼 보이거나 작은 차들도 있지만, 1950년대의 뷰익, 캐딜락, 벤츠 등이 발군의 외양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런 차들은 거액을 들여서 도색을 했기 때문에 날개를 펼친 수컷공작처럼 화려해 보인다. 이 가난한 나라, 가난한 도시에 번쩍거리는 고급차의 행렬이라니. 더구나 어느 땐 마차와 나란히 달리기도 한다. 사연을 모르거나 처음 가보는 사람은 이질적 풍경에 넋을 놓기 일쑤다.

쿠바가 클래식카의 천국이 된 데에는 뼈아픈 배경이 있다. 그 배경 때문에 ‘가난은 종종 기적을 낳는다’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쿠바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이 혁명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미국인들의 놀이터였다. 탐욕스러웠던 바티스타 정권은 미국이 손을 내미는 거라면 뭐든지 팔아먹었다. 그러다 보니 아바나는 1958년까지 라스베이거스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두는 최고의 환락도시였다. 마피아가 진출하고 미국의 부호들이 안방 드나들 듯 하면서 돈을 뿌렸다. 호텔과 카지노와 나이트클럽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고(지금 아바나의 호텔은 대부분 그때 지은 것들이다), 말레콘을 따라 카 레이싱이 펼쳐졌다. 1958년 아바나를 찾은 미국인만 30만 명에 이르렀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어떤 꽃도 영원히 필 수는 없는 법. 피델 카스트로는 1959년 1월 혁명에 성공하면서 경제 개혁에 착수한다. 사유 토지를 몰수하고 외국인 토지 소유를 금지한다. 10월에는 미국의 이권을 폐기하고 미국 자본의 착취를 제한했으며, 1960년에는 미국계 기업의 자산을 국유화했다. 이런 상황을 그냥 받아들일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여러 차례 카스트로 정권의 전복을 시도했다. 쿠바 출신 망명자들을 중심으로 무장 세력을 만들어 직접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쿠바는 1961년 1월 미국과 국교를 단절했고, 미국은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로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경제봉쇄로 쿠바가 겪은 고통은 틈틈이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클래식 카에 집중하자.

새 자동차를 구할 수 없었던 쿠바 사람들은 과거 미국에서 들어온 차나 소련에서 만든 차를 계속 탈 수밖에 없었다. 한데 차만 있으면 뭐하나? 고장이 나도 부품이 없으니 고쳐 쓸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차를 버릴 수도 없고… 궁여지책으로 아무 부품이나 비슷한 것으로 차를 고쳤다. 예를 들어, 엔진이 못 쓸 정도로 고장 나면 뜯어내고 현대나 미쓰비시 등의 엔진을 얹는 식이다. 또 부품을 직접 깎아서 쓰기도 했다. 서스펜션은 기차의 코일 용수철 등으로 해결했다. 그런 과정을 거듭 거친 차들은 결국 껍데기만 뷰익이고 캐딜락이다. 그렇게라도 수십 년 동안 굴러다닌 것을 보면 쿠바 사람들이 차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트리니다드의 자동차 정비소

한번은 트리니다드 뒷골목을 돌아다니다 자동차 정비소(?)를 본 적이 있다. 가까이 가보니 그야말로 옛날 우리의 자전거포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풍경이었다. 그곳에 자동차 한 대와 택시 한 대가 서 있고, 정비사가 뚝딱뚝딱 택시의 무언가를 고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왔다.

물론 쿠바에 올드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새 차도 많이 돌아다닌다. 특히 현대차가 많이 눈에 띈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아무나 자동차를 가질 수 없다. 값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다. 차 한 대 값이 곧 좋은 집 한 채 값이라고 보면 된다. 높은 관세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5,000만 원대에 팔린다는 푸조 508 RXH의 쿠바 판매 가격은 약 3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2014년 12월 기준) 2009년형 현대 스타렉스가 2014년 중고차 시장에 1억 원이 넘는 가격에 매물이 나온 적도 있다. 그러니 쿠바에서는 부자도 자동차가 재산목록 1호일 수밖에 없다.

쿠바에 가면 클래식카를 타볼 수 있을까? 당연히 타볼 수 있다. 클래식카를 타고 아바나 구시가를 1시간 정도 돌아보는 상품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올드카로 영업하는 택시를 얼마든지 타볼 수 있다. 운전자가 차주인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임대 영업을 한다고 보면 된다. 썩 좋아 보이는 클래식카를 타게 됐다고 해도 너무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화려한 외장은 무조건 도색의 힘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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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앉는 순간 시트는 조금의 안락감도 제공하지 않는다. 엉덩이를 조심하길. 비싼 고급차(나 같은 가난한 여행자에게 순서가 올 리 없지만)가 아니면 유리창 정도는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였을 수도 있다. 사이드 미러가 없다고 너무 걱정은 말자. 쿠바의 운전사에게는 장식물일 뿐이다. 타이어가 네 개 다 있는 게 어딘데. 문짝이 떨어지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야할 수도 있다. 아바나의 도로는 서울의 도로처럼 매끄럽지 않아서 여기 저기 움푹 팬 곳이 많다. 그러니 안락한 승차감은 기대하지 마시라. 차가 뛰면 앉은 채로 함께 뛰는 게 좋다. 언덕이 조금만 높으면 헐떡거리기 일쑤이기 때문에, 내려서 밀어주고 싶을 때도 많다. 겉모습은 예쁘지만 속은 썩었기 때문에 매연덩어리가 굴러다닌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그런 차를 타면 야호!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신난다. 소리를 질러도 말리는 사람은 없다. 오픈카일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운전사는 그럴수록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엑셀을 밟는다. 물론 그런다고 차가 빨리 나가는 건 아니다.

클래식 카와 관련된 아이러니한 일들도 많다. 예를 들면 오래된 차일수록(물론 움직인다는 전제로) 값이 비싸다는 것. 이제는 거꾸로 미국으로 팔려나간다고 한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단종을 넘어 멸종된 전설의 차가 번쩍거리며 돌아다니니, 미국인으로서는 신기할 수밖에. 아니 눈이 뒤집힌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래서 비싼 값에 사들이는 것이다. 근래에는 2,000만 원짜리 차가 6억 원에 팔렸다나? 찾기만 하면 15억은 너끈히 받을 수 있는 클래식카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세상만사 요지경이라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쿠바에 가면 꼭 올드카를 타 보시라. 돈 많이 들여서 고급차를 타지 않아도 괜찮다. 오픈카라면 더욱 좋다. 덜컥거리고 붕붕거리며 아바나 말레콘을 따라 달리다 보면 괜히 우쭐해지고 근심걱정은 말끔하게 사라질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쯤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은 덤이다. 당신의 반응이 좋을수록 운전자는 신나는 음악을 쾅쾅 틀어댈 것이다. 쿠바를 찾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호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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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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