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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다이어리8] 잊지 못할 ‘사탕수수 청년’의 눈빛

기사승인 2016.12.15  11: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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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비히아(coctel vigia)‘를 만들고 있다.

그 청년을 만난 것은 아바나 외곽 ‘헤밍웨이 집(Finca Vigia) 근처 나무그늘 아래에 앉아 잠시 땀을 들이던 때였다. 나는 칵테일 ’비히아(coctel vigia)‘를 한 잔 사서 홀짝거리고 있었다. 헤밍웨이 칵테일이라고도 부르는 비히아 역시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아바나에서 만나는 칵테일마다 헤밍웨이와 관련된 사연 한 둘쯤은 품고 있다. 그만큼 헤밍웨이가 술을 많이 마셨다는 뜻도 되겠다.

비히아는 만드는 방법이 비교적 간단한 칵테일이다. 주재료는 현장에서 짜내는 사탕수수 즙(guarapo)이다. 여기에 레몬주스(사탕수수를 짤 때 같이 넣어 짠다)와 럼을 섞으면 달콤하면서도 럼의 맛이 살아있는 칵테일이 된다. 거기에 파란 레몬 조각 하나를 띄우고 컵에 파인애플을 살짝 걸쳐놓는다. 아! 한 가지 더. 사탕수수 스틱도 하나 꽂아준다. 이 스틱은 칵테일이 잘 섞이도록 젓는 데도 쓰지만 다 마신 뒤 질겅질겅 씹으면 단맛을 오래 즐길 수 있다.

가격은 럼주를 넣으면 5CUC, 사탕수수 원액만 마시면 3CUC. 쿠바의 외국인 전용 화폐의 환율이 유로화와 거의 비례하니까 1CUC는 1250원 정도.(이중통화제도는 천천히 설명하자) 칵테일 한 잔에 5CUC면 6250원이니 길에서 파는 것 치고는 꽤 비싼 편이다. 하지만 땀을 흘린 뒤 마시는 칵테일 맛은 황홀하다. 럼주를 넣을 경우 마실 사람이 적절하다고 생각할 때쯤 “stop!!”를 외쳐야한다. 물론 나는 “some more”를 외치다가 해장술에 취했다.

기계로 사탕수수 즙을 짜고 있다.

이 칵테일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는 헤밍웨이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사탕수수를 짜서 바로 만들어준다는 게 큰 역할을 한다. 기어 같은 것이 맞물려 돌아가는 틀 같은 것을 놓고, 기어 사이에 껍질을 벗긴 사탕수수를 넣으면서 돌리면 원액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보통 두 사람이 작업을 하는데, 한 사람은 순전히 팔 힘으로 기계를 돌리고 한 사람은 사탕수수를 넣는 역할을 한다. 사탕수수에 저만큼의 수분이 들어있었나? 싶을 정도로 꽤 많은 즙이 쏟아진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쿠바는 사탕수수 농사를 주업으로 한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내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사탕수수나 칵테일 비히아가 아니라 사탕수수 기계를 돌리는 청년의 눈빛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눈은 처음 봤다. 그렇게 열망으로 가득 차있고,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한 듯 텅 빈 눈이 또 있을까? 청년의 눈은 기계를 돌리면서도 기계에 있지 않고 사람들 너머의 공간을 맴돌았다. 누군가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것 같아서 눈길을 따라가 보면 그 끝엔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저리 찾는 것일까?

사탕수수 즙을 짜는 청년.

가출하기 전 날 번들거리던 영득이 형 눈빛 같기도 하고, 대처에 갔다가 아비 없는 아이 하나 데려온 순미 누나의 초점 없던 눈빛 같기도 한 그 눈에는 숱한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머나먼 땅에서 온 나그네에게는 끝내 그 끝을 보여주지 않는…. 칵테일 마시는 것도 잊은 채, 내 시선은 내내 그 청년을 쫓아다녔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아니다. 단 한 가지는 읽을 수 있었다. 청년은 우리에 갇힌 짐승 같았다. 끊임없이 탈출을 꿈꾸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 모습에서 웅크리고 살아야 했던 내 청년기의 모습을 읽어내고야 말았다. 그 때 내 눈길이 저랬을까? 여행을 다니다 보면 아주 엉뚱한 곳에서 지난날의 내 모습을 만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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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을 꿈꾸는 것은 사탕수수를 짜는 청년 뿐은 아니었다. 외부인의 피상적 관찰에 불과하지만, 많은 쿠바의 청년들이 그랬다. 그들이 혼돈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곳곳에서 관찰되었다. 그만한 연령대에서 겪는 성장기의 혼돈이 아니라 외부적 환경이 강요하는 혼돈이었다. 격변기의 쿠바 역시, 태어난 곳에서 살다가 그런 삶이 전부인 줄 알고 한 생을 접는 시절은 과거가 되었다. 나라의 문이 열리고 관광산업이 활성화 되고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 물결이 스며들면서, 땅을 파지 않고도 사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시의 화려한 밤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히하를 마시는 관광객.

다른 나라의 청년들이 그렇듯, 그들도 도시의 삶을 꿈꾼다. ‘용기 있는’ 청년들은 발 빠르게 도시로 흘러들어 ‘삐끼’가 되기도 하고, 떠돌이 행상이 되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자전거 택시(bici-taxi)를 모는 ‘사장’이 되기도 한다. 음악적 재능이 있는 친구들은 가수나 연주자가 되기 위해 거리의 고된 수련을 자청한다. 하지만 학습되지 않은 자본주의가 모두에게 복음을 전해줄 리는 없다. 아니, 학습될수록 빈부의 격차는 커질 뿐이다. 꿀처럼 달콤한 맛을 보는 청년도 있겠지만, 쓰디쓴 실패에 우는 청년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몰려들수록 도시에는 숱한 잉여인간이 떠돌게 될 것이다.

사탕수수를 짜는 청년도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닐까? 떠날까 말까, 계속 사탕수수를 짜고 있어야 하나? 여기사 조금만 벗어나면 화려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열망으로 이글거리다 금세 식고 마는 꿈. 물론 짐작일 뿐이다.

헤밍웨이의 집에서 내려오는 길에 또 하나의 청년을 만났다. 청년은 차마다 붙잡고 “베리 굿 바나나”를 읊조렸다. 눈에는 바나나를 팔고 싶다는, 아니 팔아야 한다는 간절함만 있을 뿐이었다. 대개는 “노 그라시아스”(No thank you)를 외치며 거절을 표시했지만 청년은 포기하지 않고 차와 차 사이를 배고픈 벌처럼 옮겨 다녔다. 청년에게 산 바나나에는 절망과 희망의 맛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이호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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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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