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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다이어리9] 아바나는 밤에 다시 태어난다

기사승인 2016.12.19  12: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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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보다는 훨씬 한적해진 골목

아바나는 밤에 다시 태어난다. 이상한 일은 낮에 인파로 북적이던 곳은 밤이 되면 쥐 죽은 듯 고요해진다는 것이고, 낮에 볼 게 없어서 그냥 지나친 곳은 밤이 되면 성장(盛粧)한 미부(美婦)처럼 변신을 한다는 것이다. 마치 탈 하나를 벗고, 아니면 새로 쓰고 무대에 오르는 것 같다. 밤이 되면 풍경에 ‘흥’이 덧씌워진다. 같은 불빛 아래 현지인과 외지인의 구분이 사라진다. 그래서 밤의 속살을 보지 않고 아바나를 다녀왔다고 하면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아바나의 밤은 조금 늦게 문이 열린다. 만약 당신이 화려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초저녁 탐색에 나섰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사람으로 미어터지던 골목은 썰물 뒤의 갯벌처럼 쓸쓸하고, 그 자리를 줄지어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들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어두컴컴한 곳에 하염없이 앉아있는 청년들을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는 게 아니다. 하릴없이 앉아있을 뿐이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는 문을 닫을까 좀 더 열어놓을까 고민하고, 저전거택시를 모는 청년들은 빈 자전거를 몰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오로지 노천카페만 환하게 불을 밝혀놓고 있다.

노천카페 풍경. 여기서도 공연이 벌어진다.

물론 당신처럼 정보에 어두운 외지인 몇몇과, 눈 먼 물고기라도 건져보려는 ‘삐끼’들을 만날 수는 있다. 그 순간 삐끼를 따라 들어간다면 당신은 아바나의 밤을 반만 보는 것이다. 노는 셈 치고 좀 더 돌아다녀야 한다. 그러다가 어느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눈이 환하게 떠지는 밤과 만날 것이다. 화려한 불빛과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 골목 어디쯤에서 초저녁부터 취한 술꾼과 몸을 부딪칠지도 모른다. 그런 땐 화를 내지 말고 같이 비틀거리는 것도 좋다. 아바나의 밤에 싸움 같은 건 없다. 혹시 치안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게 낫다.

어두움과 화려함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술집들이다. 헤밍웨이의 단골집 라 보데기타(LA BODEGUITA DEL MEDIO)나 라 플로리디타(La Floridita)와 몇몇 집(아바나에서는 바와 레스토랑, 카페의 구분이 애매하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손님이 넘쳐 나지만 밤에만 불야성을 이루는 곳도 많다. 밤을 즐기고 싶으면 여기저기 오랫동안 기웃거릴 일이다. 그 자체가 재미니까.


그날 밤은 운이 좋았다. 낮에 갔던 라 보데기타에서 모히또 한 잔 마시고 말았던 게 마음이 걸려서 다시 한 번 찾아갔지만, 또 그냥 발을 돌려야 했다. 사람들은 아예 그곳에 뿌리를 내리기로 작정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보다 더욱 북적거렸다. 그리고 낮보다 훨씬 화려했다. 이미 아홉 시가 넘은 시각. 하지만 아바나의 밤은 간신히 문을 열었을 뿐이었다.

결국 다른 술집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렇게나 들어간 곳이었다. 한눈에도 ‘전형적’인 술집이었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즐기는 곳이라는 뜻이다. 맥주를 한 캔 시켜놓고 무대 앞에 앉아있는데, 두 남자가 느닷없이 다가와 다짜고짜 물었다.

“안녕? 당신 일본인이야? 한국인이야?”
이런 뜻밖의 상황이라니. 조금 무례하다 싶을 정도였다. 이런 땐 곱게 대답이 나올 턱이 없다.
“그건 왜?”
“아니, 우리가 내기를 했거든. 나는 당신이 일본인이라고 했고, 여기 내 친구는 한국인이라고 했고…. 일본인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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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웃음이 나온다. 이쯤 되면 그들의 내기에 끼어드는 수밖에. 세상을 살면서 심판의 역할을 할 기회가 어디 그렇게 흔한가? 그 순간 나는 절대자다. 내 입만 바라보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너희들에게는 코레라고 해야겠구나. 코레!!”

순간 술집이 들썩일 정도의 함성이 터졌다. 물론 이긴 사람의 입에서 나온 환호였다.

“사실은 진 사람이 당신에게 술을 사기로 했거든. 조금만 기다려. 술이 올 거야. 뭐 마실 건데?”
“으음, 모히또!”

모히또라고 대답하면서도 설마 술을 사겠나 했다. 이긴 사람은 루마니아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친구들과 여행을 온 것이었다. 뜻밖에도 그는 한국을 제법 많이 알고 있었다. 서울, 부산, 제주는 물론 목포까지 가봤다고 자랑했다. 지명을 또박또박 외우고 있었다. 그 정도면 ‘친구’를 넘어 ‘형제’처럼 반가운 사이가 될 수밖에. 그들은 이미 술에 꽤 취해 있었다. 이것저것 한참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모히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바의 연주자들

우연히 들어간 집 치고는 공연이 괜찮았다. 밴드의 구성이나 음악적 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엄청 ‘잘 논다’는 장점이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신나는 춤과 노래가 펼쳐졌다. 쿠바를 돌아다니다 보면 내 의식 속의 선 하나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기서는 흑과 백, 혼혈 등의 구분이 아무 의미가 없다. 유럽이나 미국은 잘 들여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경계가 보이기 마련인데 쿠바에서는 그 선이 완전히 지워져 있다. 한곳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려 노래하고 몸 부비며 춤을 춘다. 연주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 손을 잡아도 마치 같은 학원에서 춤을 배운 듯 스텝과 동작이 척척 맞아 떨어진다. 완전한 이방인, 게다가 치명적 몸치인 나까지 저절로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흥겹다. 잠자던 흥이 서서히 깨어나는 걸 느낄 수 있다.

술을 마시다 서로 어울려 춤을 추는 손님들

매번 감탄하는 것이지만, 아바나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정말 춤을 잘 춘다. 살사를 추기 위해 쿠바에 오는 유럽인들도 많다더니 절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한 쌍의 남녀가 나오더니 화려한 춤을 선보였다. 아직도 고루함이 말뚝처럼 박힌 내 눈에는 민망할 정도의 춤이었다. 마치 사랑에 겨운 남녀가 온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부비고 돌고 또 부볐다. 남녀의 온몸에서 끈적이가 분출되는 것 같았다. 저건 춤이 아니라 애무잖아? 그렇게 뜨거운 춤을 마치고 들어간 여자가 잠시 뒤에 또 나왔다. 파트너가 바뀌어 있었다. 부럽다!

정신없이 춤에 빠져 있을 무렵, 내 테이블에 모히또가 도착했다. 루마니아 친구가 보내준 것이었다. 어라? 농담이 아니었어? 둘러봤더니 모히또를 보내준 친구들은 술에 취해 떨어져 있었다. 특히 내기에서 이겼다는 친구는 인사불성이었다. 내게 보낼 모히또를 주문해 놓고, 승리의 기쁨에 과음을 한 모양이었다. 설마, 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바나의 밤은 내 영혼을 통째로 저당 잡은 채 깊어갔다. 대체 지금이 몇 시야? 시계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랄 만큼 밤이 깊어 있었다. 어느 도시든 밤과 낮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바나만큼은 아니었다. 아바나는 밤이 되면 완전 변신을 한다. 쿠바에 가는 그대여! 잠을 반납하시라.


이호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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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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