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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다이어리10] 떠돌이 개 ‘자유’를 만나다

기사승인 2016.12.21  10: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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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에서 만난 자유. 사진 찍을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광장을 찍은 사진에 들어와 있었다.

광장은 비어 있었다. 불빛을 찾아가는 몇 사람의 걸음만 나풀거릴 뿐이었다. 한낮을 가득 메웠던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술집들이 줄 지어 있는 곳이 아니니 그럴 만도 했다. 광장은 그 시간에 사람을 불러 모을 능력이 없었다. 물론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진을 몇 장 찍다보니 저만치 개 한 마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워낙 개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곳이니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저녁이나 얻어먹었을까? 괜한 걱정은 덤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도 다 있지. 가볍게 여기고 지나갈 법도 하련만 눈길이 자꾸 그쪽으로 향했다. 그 개에게는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무엇’이 있었다.

개는 특별한 경계를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와락 달려들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면 어둠 속 여기저기 개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개만 그들과 제법 떨어진 곳에 있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 특유의 ‘거리’가 확연했다. 그게 바로 쓸쓸해 보이는 이유기도 했다. 관계를 벗어나 자유를 얻고 나면 그만큼의 고독을 지고 가야하는 게 운명이니까.

왠지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혼자 떨어져 배회하는 개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을까?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나는 눈을 비비고 말았다. 아, 자유! 그래, 자유였다. 내 친구이자 내가 이름을 지어준 강아지. 자유. 충청도 어느 바닷가 외진 마을을 떠돌거나 모래밭에서 갈매기들과 장난치고 있어야 할 자유가 어떻게 이곳에 있을까? 나는 자꾸 눈을 비볐다. 어쩌면 나는 지금 영화나 만화 속에 들어와 있는 건지도 몰라.

충청도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만나 한 철을 함께 지냈던 자유

자유는 두 해 전 여름, 산문집을 쓰기 위해 바닷가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 만난 강아지다. 페이스 북에 자유의 이야기를 몇 번 올리면서 졸지에 ‘유명견’이 되기도 했다. 원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배부른 목줄 대신 배고픈 방랑을 선택한 그에게 내가 지어준 이름이 자유였다. 이름처럼 떠돌이였다. 우리는 날마다 만났다. 내가 아침 산책에 나서면 숲이든 집 모퉁이든 예기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반기고는 했다. 이슬을 맞고 자는 바람에 온몸이 젖어 있어도 거리낌 없이 서로 안을 수 있었다. 내가 그 마을을 떠날 때까지 그런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런 자유가 이곳에 있다니. 대체 어찌된 일일까? 아무리 봐도 외모가 똑같았다. 같은 종의 개가 쿠바에 없으란 법도 없고, 비전문가의 눈이니 생김새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도 없는데다, 착각이라는 건 늘 일어나지만, 그 순간 나에게는 같은 개였다. 자라다 만 듯한 키, 거의 등가죽에 붙었을 만큼 홀쭉한 배, 금방 눈물이라도 흐를 것처럼 슬픈 눈, 뾰족한 입, 한쪽이 야간 더 늘어진 귀, 특히 빨간 콧등까지…. 다만 조금 더러워져 있었다. 갈매기를 쫓던 자유보다 활기도 덜해보였다.

가까이 가자 자유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동자에 숱한 이야기가 들어있는데 속속들이 읽어낼 수 없었다.

“자유야! 이리와.”

혹시나 싶어서 불렀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왔다. 그리고는 내 다리에 얼굴을 마구 부볐다. 믿을 수 없었다. 이 아이도 나를 알아보는구나.

“왜 여기까지 와서 돌아다니고 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언제 온 거야?”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자유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혹시나 싶어서 전에 자주 하던 지시를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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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앉아!”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자유가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손동작도 없이 단지 그 한 마디만 했는데,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네 다리를 뻗고 넙죽 엎드렸다. 마침 함께 지나던 일행이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우연의 일치라는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호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도 과자부스러기 하나 잡히지 않았다. 전에는 곧잘 육포를 나눠주고는 했는데. 자유를 먹이기 위해 일부터 산 적도 많은데. 아무것도 줄 수 없으니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가까운 곳에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쿠바야말로 돈을 갖고도 물건을 사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드물게 식료품 가게가 있어도 내국인 전용이 많다.

내가 걷고 자유가 곁을 따랐다. 오른쪽에서 딱! 한 걸음만큼 뒤쳐져서. 전에도 그랬다. 그리고는 광장이 끝나고 다시 골목이 시작될 무렵, 나를 한번 올려다보더니 몸을 돌렸다. 전에도 산책이 끝나는 곳에서 미련 없이 몸을 돌리고는 했다. 부를 때마다 멈추기는 했지만 끝내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 자유가 자유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잡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서서 오랫동안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잘 가! 자유야. 영원히 자유로우렴.”

허청거리는 걸음으로 골목을 한참 걷고 나서야, 사진 한 장 찍어놓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점이 가장 안타까웠는데 서울로 돌아와 사진을 뒤지다 보니 광장 사진 중에 우연히 자유가 잡힌 게 한 장 있었다. 마치 자신을 찍으라고 다가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내겐 그 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자유에게 깊이 빠졌던 시간이었다. 그는 정말 자유였으니까. 그래도 스스로를 믿을 수 없어서 동행에게 다시 한 번 확인하고야 말았다.

“조금 전에 강아지를 만났던 게 맞지요? 앉으라는 말에 바로 앉았던 것도 사실이지요?”

그가, 쿠바 개가 우리말을 알아 들어서 깜짝 놀랐다고 거듭 거듭 이야기할 때쯤에, 잠깐 불행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국의 자유, 바닷가의 자유가 죽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나는 오래 슬퍼하지 않았다. 우린 또 어디선가 만날 테니까. 그곳이 히말라야 설산쯤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 곳곳을 다니다보면, 그동안 입력한 지식이나 상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꽤 많다. 그런 것까지 기록해야 하나(기록해봐야 누가 믿을까) 고민하다가, 생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번에는 기록으로 남긴다. 미국의 던컨 맥두걸(Duncan Macdougall)의 실험에 의하면, 우리는 분명히 21g의 영혼을 가진 존재들이니까.


이호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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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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