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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다이어리12] 나를 사랑(?)한 까사의 안주인

기사승인 2016.12.27  10: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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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중부 트리니다드에서 머물렀던 까사의 안주인 이름은 아레이나였다. 갈색의 피부로 볼 때 물라토(mulatto 중남미에 사는 백인과 흑인의 혼혈)가 분명했지만, 쿠바에서 흑과 백, 갈색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지 않은지 오래다. 인종은 오래 전에 사라지고 쿠바사람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레이나는 호기심이 많고 적극적인 여자였다. 억척스럽기도 해서, 집안 살림을 혼자 다 맡아 했다.

내가 묵었던 트리니다드 까사의 집안 풍경. 저 앞에 보이는 사람이 바로 날마다 노래만 부르는 아들이다.

조금 왜소해 보이는 바깥주인은 메리야스 차림으로 어슬렁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집을 수리할 때는 모르겠지만, 일상생활에서 아내의 일을 도와주는 경우는 없었다. 정말 가관인 것은 덩치가 산만한 아들이었다. 30대쯤(외국인의 나이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으로 보이는 이 친구는 자주 웃통을 벗고 있었는데, 대부분 하는 일은 노래방 기기 앞에서 꽥꽥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노래방 기기가 집에 갖춰져 있다는 것은 꽤 부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친구가 늘상 같은 노래만 부른 다는 것. 클라이맥스쯤에 가면 거의 고문 수준이었다. 본인은 헤드폰을 쓰고 있기 때문에 들을 수 없는, 그 명부(冥府)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음울한 비명. 시집가지 않은 딸도 하나 있긴 하지만 엄마를 돕기보다는 거울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도 아레이나는 힘들어하거나 좌절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 대신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삶이 주는 생채기들을 치유하는 것 같았다. 특히 나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보였다. 내가 안마당을 지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서 무조건 “꼬레아”하고 불렀다. 그 동네에서는 드문 동양인 손님이라서 특별히 보이는 호기심을 조금 넘은 것 같았다. 내 국적이 코리아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순전히 여권 때문이었다. 쿠바에서는 호텔이든 까사든 처음 들어갈 때 여권을 맡겨야 한다. 주인은 여권에 기재된 내용을 꼼꼼하게 장부에 적는다. 옛날 우리나라의 숙박부 제도를 닮았다. 나중에 정부 기관에 보고하는 것 같았다. 나는 첫날 그녀가 여권 내용을 ‘숙박부’에 옮겨 적는 과정을 들여다 보았다. 그녀가 한 자 쓰고 나를 보며 웃고, 또 한 자 쓰고 나를 보며 웃었다. 꽤 정갈한 글씨였다.

나를 불러 세우기는 하지만, 그녀에게 별다른 용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눈에 보이면 부르고 보는 것 같았다. 문제는 나는 스페인어를 거의 모르고, 그녀는 한국어는 커녕 영어도 한 마디 못한다는데 있었다. 그러니 서로 마주보다 돌아서거나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누는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손짓으로 “내일 아침 식사는 몇 시에 할 거야?” 물으면 손가락을 하나 둘 헤아려 대답하는 게 고작이었다.

특히 그녀가 내게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빨래였다. 다른 손님들과 같이 있을 때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나 혼자만 남으면 빨랫감을 내놓으라고 졸랐다. 자기가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참 난감한 일이었다. 나는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날마다 빨래를 하기 때문에 내놓을 만한 빨랫감이 있을 턱도 없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어찌 남의 여자에게 내 속옷 빨래를 시킨단 말인가. 나중에는 그놈의 ‘빨래’ 소리를 듣기 싫어서 그녀를 피해 다닐 정도였다. 물론 그래도 자주 틀켰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녀가 나를 좋아했기 때문에 빨래감을 달라고 한 것일까? 아니면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서(까사에서 빨래를 해주면 5CUC 정도를 주는 게 상례다) 집요하게 조른 것일까. 물론 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싶지만….

내가 묵었던 까사의 방. 별다른 시설은 없고 싱글 침대가 두 개 놓여있다.

아레이나가 운영하는 까사는 특별히 호화롭지도 않고 옹색하지도 않은 중급 정도의 민박이었다. 좁은 입구와 소파가 놓인 응접실, 주방과 식당을 지나 나타나는 작은 마당과 여러 개의 방… 전형적인 그 지역의 주택 구조를 가진 집이었다. 처음에 배정된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최근에 수리를 한 듯 페인트 냄새가 심했지만, 꽤 지친 상태였던 터라 그냥 묵기기로 했다. 까사는 보통 식사까지 제공한다. 메뉴는 표준화되다시피 해서 빵과 오믈렛에 커피‧우유‧차 등이 나오는데 가격과 주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아레이나는 말로는 특별식을 해준다면서도 늘 ‘표준식’에 충실했다.

까사 표시. 저 표시가 붙어있는 집은 무조건 까사라고 보면 된다.

스페인 말 ‘까사(casa)’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통은 집을 말하지만 가족이나 회사‧상점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까사라고 하면 민박을 지칭한다고 보면 된다. 원래는 ‘까사 빠르띠끌라’지만 현지인이든 여행객이든 그냥 까사라고 부른다.

쿠바에 까사가 발달한 데는 나름대로의 배경이 있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고통을 겪던 카스트로 정권에서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정책이 관광산업 활성화였다. 별 밑천 안 들이고 돈을 벌 수 있는 게 관광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쯤에서 시간이 멈춘 나라, 쿠바야 말로 여행자들에게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관광산업을 시작하면서 마주친 문제가 바로 여행자들이 묵을 만한 숙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바나 같은 대도시나 바라데로 등의 휴양도시에는 미국인들이 남겨놓은 호텔이 있었지만, 다른 지방에는 변변한 숙소가 없었다. 그렇다고 호텔을 새로 지을만한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까사, 즉 민박업이었다. 까사는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집을 규정에 맞게 수리해야 하고 별도의 샤워실과 화장실을 갖추어야 허가를 내준다. 그렇다고 편의시설을 잘 갖춘 서구식 숙소까지 기대하면 안 된다. 민박은 그저 민박일 뿐이니까.

집집마다 시설이나 손님 접대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까사는 복불복’이라는 말까지 있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가족처럼 편히 지내기도 하지만, 장삿속에 먼저 눈을 뜬 주인을 만나면 별로 친절하지 않아서 데면데면 묵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시설도 천양지차다. 어느 집은 우리나라 1960년대의 여인숙처럼 옹색하지만, 고풍스런 집을 개조한 까사를 만날 경우 호텔보다 훨씬 뜻있는 여행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유용하고 재미있었다. 그곳 사람들의 삶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타인의 삶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여행을 할 때 호텔이 아니면 불편해서 견딜 수 없다는 사람들도 간혹 만난다. 개인의 취향에 대해 뭐라고 할 건 아니지만, 나는 가능하면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권한다. 불편을 조금만 감수하면 진솔한 삶의 현장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레이나는 잘 있을까? 여전히 남자손님 뒤를 따라 다니며 “빨래”를 외칠까? 혹시 나를 그리워할까? 트르니다드에 다시 가게 되면 꼭 들러볼 생각이다.


이호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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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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