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ad38

[쿠바 다이어리13] 아바나의 자유인들

기사승인 2017.01.03  11:36:57

공유

사회주의 국가는 사람 사는 모습이 획일적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삶에 찌들어있다? 쿠바에 가면 그런 선입관은 여지없이 깨진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흔히 말하는 기인도 많다. 어느 바에서는 술에 취한 헤밍웨이를 만나기도 했다. 생긴 것이나 옷차림이나 하는 ‘짓’이나 내 머릿속에 형성돼 있는 헤밍웨이의 이미지와 완전 일치하는, 시쳇말로 ‘싱크로율 100%’였다.

어느 골목길을 걷다가 체 게바라를 만난 적도 있었다. 그땐 나 역시 체 게바라가 즐겨 쓰던 별이 새겨진 베레모를 쓰고 있었는데, 같은 복장이었던 그는 내게 정중하게 거수경례를 했다. 내가 ‘싱크로율’이 더 높으니 존중한다는 뜻일까? 그땐 나도 수염을 기르고 헤어스타일이 생전의 체 게바라와 비슷했으니 그런 뜻으로 해석할 만도 하다. 복장 하나로 우리는 마치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 어디쯤에서 함께 게릴라 활동이라도 한 듯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쿠바에도 그렇게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산다. 그들에게서는 어떤 올가미로도 옭아맬 수 없을 것 같은 자유의 냄새가 난다. 막상 내밀한 삶을 들여다보면 자유 따위는 없는 곳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행자인 나는 그렇게 보고 느꼈다. 몇몇 영화에서 보았던 통제와 긴장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의 기질 자체가 ‘자유형’인 것 같았다. 한 때 노예로, 혹은 피지배자로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것일까? 어떤 가난과 압제도 그들의 노래와 춤을 막지 못할 것 같았다.

그 노인을 만난 것은 역시 헤밍웨이가 자주 다녔다는 아바나의 작은 바, 라 보데기타에서였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이곳은 밤이 깊을수록 흥이 무르익는다. 새벽까지 도저히 멈추지 않을 것 같은 그 열기는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대부분의 손에는 모히또가 들려져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쿠바에서 음악은 묘약과 같아서 죽은 나무도 춤을 추게 한다. 상대만 있으면, 혹은 눈만 마주치면 아무하고나 손을 잡고 돈다. 익숙한 노래가 나오면 어디에서든 합창을 한다.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셔도 춤이 절로 나온다. 뻘쭘하게 서 있거나 앉아있는 나야말로 이방인 중의 이방인이었다. 그렇다고 구경하는 자에게 뭐라는 사람은 없다.

그 흑인 노인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튀는 존재였다.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지 않는다는 면으로 보면 나보다 더 이방인 같았다. 하지만 한눈에도 그 자리의 오랜 붙박이가 틀림없었다. 사람도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면 풍경이 되기 마련이니까. 내가 본 쿠바 사람들은 옷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티셔츠 하나면 오케이다. 그런데 이 노인은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얀 바지에 긴 팔 셔츠에 재킷까지 제대로 갖춰 입었다. 머리에는 베레모를 썼고, 하얀 수염을 구름처럼 풍성하게 길렀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흉내 내기 어려운 복장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노인에게는 그 ‘답답한’ 복장이 곧 자유의 상징처럼 보였다. 누가 뭐래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노인은 시가를 물고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며 장승처럼 서 있었다.

나 역시 라 보데기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노인과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작은 소년 하나가 노인에게 다가갔다. 여덟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였다. 역시 흑인이었는데, 혼혈에 가까워 보였다. 특이한 것은 노인과 반대로 온통 검게 입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모자까지 검은 색이었다.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의 복사판이라고나 할까? 보통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복장은 아니었다.

default_news_ad2

느닷없이 풍경이 바뀌었다. 노인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가 길 가운데로 나서더니 멋지게 노래 한 자락을 뽑는 것이었다. 누가 청한 것도 아닌데…. 한데, 보통 노래가 아니었다. 변성기가 되기 전의 청량한 목소리와 풍부한 성량. 한마디로 길에서 보기에는 아까운 수준이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박수가 쏟아졌다. 노래를 마친 아이가 의젓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더니 급조된 관객과 악수를 나눴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스스로 그 분위기를 즐기는 게 역력했다. 여행객 중 한 사람이 돈을 쥐어주니, 부끄러운 듯 받더니 얼른 들고 가서 노인에게 맡겼다. 마치 세뱃돈을 탄 아이의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둘은 무슨 관계일까? 혹시 돈을 벌기 위해 나온 걸까? 아이들을 앵벌이 시켜서 돈을 착취한다는 ‘악덕 보호자’가 떠올랐다. 궁금한 걸 참으면 병이 되는 법. 노인에게 물었다.

“저 아이가 누구예요? 제자? 손자?”
“하하! 누구긴, 내 손자지.”

그래서 짐작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조손 관계란다. 즉, 친할아버지와 손자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춤과 노래를 가르치는 스승 겸 할아버지? 신이 난 아이가 이번엔 거리 한 가운데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도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듯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어떻게 손과 발이 저렇게 부드럽게 돌아가지? 노인도 흥이 올랐는지 길 한가운데 나서서 즉석 춤 교습을 시작한다. 역시 그는 전문가였다. 오랜 세월 춤과 함께해온 관록이 온몸을 물처럼 흐른다. 아무나 상관없다. 스텝을 가르치고 함께 춤을 춘다. 종내는 모든 사람이 어우러져 노래하고 춤을 춘다. 즉석 군무가 펼쳐진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지. 노인도 아이도 여행자도 현지인도… ‘너와 나’의 경계는 사라지고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만 남았다.

어느 순간 노인과 아이가 슬그머니 군중 속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즐길 만큼 즐겼으니 떠난다는 말을 뒷모습으로 남기고…. 조건 없이 노래하고 춤추고 가르치고 즐기다 홀연히 돌아서는 사람들. 그들이 떠난 뒤에도 남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군무에 합류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한 나 역시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누리는 것’이라는 문장 하나만 들고도 행복했다. 역시 자유는 많이 갖거나 많이 배운 자들이 누리는 게 아니었다. 늘 거기 존재하되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었다.


이호준 sagang@mediasoom.co.kr

<저작권자 © 미디어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nd_ad6
default_side_ad4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