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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떡이 많으십니다”

기사승인 2017.10.02  16: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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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역 근처였습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길 모퉁이에 서 있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복작거리는 찻집이나 카페보다는 길 위에 서서 누군가 기다리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한 남자와 함께 걸어가던 여자가 저를 보더니 방향을 틀어 다가옵니다. 입가에 아카시 꽃처럼 환한 미소를 물고 있습니다. 누구지? 아는 사람은 아닌데? 그녀가 가까이 와서 말을 건넵니다.

“콩떡이 많으십니다.”

어라? 콩떡? 내가 무슨 콩떡을 갖고 있다고 그러지? 아무래도 뭔가 잘 못 들은 것 같아서 확인을 해봅니다.

“콩떡이라고요?”
“아뇨. 콩떡이 아니라 공덕이 많아 보이신다고….”

그럼 그렇지. 역시 잘못 들은 것이었습니다. 공덕을 콩떡이라고 듣다니. 외국인도 아닌데 발음에 과도한 악센트를 사용한 그녀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불현듯 ‘도를 아십니까’가 생각납니다. 이들 역시 비슷한 부류인 모양입니다. 전에는 젊은이들이 주로 말을 걸어오더니, 이들 남녀는 제법 나이가 있어 보입니다. 얼른 손을 홰홰 저어 대화를 나눌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힙니다. ‘도를 아십니까’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젊어서 처음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자칫 ‘당할’뻔한 기억도 있습니다. “큰 복을 타고 났는데, 조상의 원을 풀지 못해서 고생한다”는 위로 아닌 위로에 솔깃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도 주변에서 별별 말이 다 들려왔지요. 누구는 그런 사람들을 따라 갔다가 본의 아니게 ‘제사’를 지내고 돈을 뜯겼다고도 했고요. 그래서 그들에 대한 이질감은 커지기만 했습니다. 전에는 종로 쪽에 많더니 이젠 강남이나 홍대 인근에 자주 출몰한다고 하지요. 요즘은 직접 마주쳐도 젊었을 때와 달리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이제는 무슨 말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지요.

그들이 던지는 멘트 역시 세월 따라 업그레이드 된 모양입니다. “얼굴에 복이 많다” “인상이 참 좋다” 정도는 고전적인 대사고, “행운이 좋아 보이네요. 5분만 시간내주실수 있죠?” “조상님 복이 많으시네요”도 꽤 널리 알려진 멘트입니다. 길을 물어본다는 말로 접근하는 경우도 흔하고요. “요즘 꿈을 많이 꾸시지요? 조상의 묫자리가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누구를 가르친 적 없으신가요?” “겉은 남자답지만 속은 여리시죠?” 같은 말들로 나날이 진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가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습니다. ‘피해’까지는 몰라도 불안했다든가 불편했다, 무서웠다, 화가 났다는 이야기들이 꽤 많았습니다.

“어떤 아줌마랑 어떤 남자가 같이 다가오는 거예요. 그래서 어! 뭐지? 하고 빨리 걸었는데, 결국 잡혀서 조상님 얘기도 하고 꿈 많이 꾸지 않느냐는 그런 비스무리한 말을 하더라고요. 무서워서 길 가는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SOS눈짓을 보내도 아무도 안도와주더라고요. 눈물이 막 고여서 옆으로 도망가는데도 안 놔주고, 마침 경찰이 지나가서 용기를 내서 도망 왔어요. 도를 아십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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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를 보여주면서 관심을 끈 다음 자기네들 푸르넷 공부방으로 가서 얘기하자고 해서 갔더니 5시간가량 붙들고 보내주질 않아요. 더군다나 밤8시가 다 되어가고 있어서 간신히 빠져나왔네요. 어이가 없던 건 ‘도를 아십니까/사이비종교’ 이런 거 절대 아니라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건 뭔지. 무시하고 가려고 해도 걸려들어 당한 경우가 여러 번 있어서 화가 나네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인터넷에는 이런 ‘피해 사례’들에 대한 대처법도 다양하게 올라와 있습니다.

“미친 것처럼 행동하세요. 아무리 그래도 미친개는 안 건드리니까요.”
“도 말고 하느님을 믿으세요!! 할렐루야!!! 아멘!! 이래보세요. 역으로 나가떨어질 겁니다.”
“살짝 눈을 풀은 뒤 온몸에 힘을 뺍니다. 그다음 영혼이 없는 듯 걸으며 귀신인 척 말합니다. ‘제가… 보이세요…?’ 마치 보이는 것이 되레 이상한 것처럼 연출하여 몰아갑니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는 척 하거나 노래에 취한 듯 마치 영혼을 맡긴 듯 노래를 부르며 말 할 틈을 주지 않도록 해요.”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대꾸 없이 자기가 갈 길을 묵묵히 가는 것입니다.”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아예 무시하면 됩니다.”

시사 잡지 <시사저널>에 따르면 최근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요. 이들은 홍대 거리 같은 곳에서 영어로 외국인에게 접근한다고 합니다. 기사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지난 5월, 미국인 테일러(가명)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국에 온 이튿날, 길에서 갑자기 어떤 남자와 여자가 접근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한국문화 교육자라고 소개하며 한국 전통문화에 대해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테일러는 그들이 앳돼 보이고 또 아주 친절해 별 의심 없이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한 허름한 가정집이었다. 셋은 한복으로 갈아입고 방으로 들어가 양초 하나를 켜놓고 제사를 지냈다. 제사가 끝난 후 남자와 여자는 “앞으로 100일 동안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전통”이라며 100개의 양초를 사는 데 필요한 돈을 요구했다.’

이들이 외국인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돈 때문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한 연구자는 종교단체에서 외국인을 개종시키려는 목적도 갖고 있다는 주장합니다. 또 그렇게 해서 개종한 외국인은 한국인을 포섭하는 모집책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를 두고 ‘갈수록 태산’이라고 하나요? 아무튼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이를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이나 법은 없을까요? 예를 들면 본인의 의사에 반한(동의했다고 하더라도 거짓과 과장을 동원한 설득이 있었거나) ‘제사’를 지내주고 돈을 내라는 행위 같은 범죄에 들어가지 않을까요? 아무튼 그런 사람이 무서워서 눈물을 흘리며 도망갔다는 사례가 실제로 있으니, 피해가 발생하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공포를 느끼거나 고통을 받거나, 하다못해 가는 길을 방해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역시 이 나라에 사는 국민의 권리이니까요.


이호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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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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