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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쓰는 편지] 쓸쓸함에 대하여

기사승인 2017.10.21  14: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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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슬픔이 뇌수에 박힌 사람은 우는 것조차 할 수 없고, 외로움이 뼈에 사무친 사람은 외롭다 말하지 않는다고…. 쓸쓸함도 그렇겠지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쓸쓸한 광경 앞에 서면 쓸쓸하다는 말은 저만치 달아나 버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쓸쓸할 때마다 소리 내어 쓸쓸하다 말하겠습니다. 말이 되어 나올 때 쓸쓸함은 비로소 제 모양을 갖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모양 잘 갖춘 쓸쓸함을 어디 쓸 거냐고요? 가을이 되었으니 많은 이들과 나눠 써야지요.

서울 근교에, 주변사람들에게는 숨기고 살짝살짝 혼자만 다니는 조그만 절이 있습니다. 삶의 무게로 등이 휠 것 같은 날이면, 세상의 끝까지 밀려난 듯 고통스런 날이면, 그 절에 가서 쓸쓸함에 푹 젖어 돌아옵니다. 가끔 다람쥐나 들러 갈까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감나무 하나가 하늘을 찌를 듯 우뚝한 절입니다. 몇 안 되는 스님들은 가을이 되면 곶감을 만들어 곳곳에 거는 걸로 소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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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게는 깎을 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햇살이 자리를 펴주는 대로 양지바른 곳만 쫓아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오래 전에 떠나온 고향이나 감나무 우듬지 같은 먼 곳에 시선을 맡기다가, 눈물이라도 날만큼 쓸쓸해지면 산을 내려옵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담아온 쓸쓸함을 조금씩 나눠줍니다.

저는 아무리 부족함 없이 사는 사람이라도, 계절이 이리 오고가는데 쓸쓸하다는 감정 한번 느끼지 못한다면 반쪽의 삶일 뿐이라고 믿습니다. 소금간만으로는 감칠맛을 낼 수 없듯이, 우리네 삶에 쓸쓸함도 꼭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을 지난 나무가 새싹을 틔우듯, 쓸쓸한 가을을 건넌 사람이 겨울을 너끈히 이겨냅니다.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굳이 도망치려 애쓸 것도 없습니다. 어느 땐 일부라도 그 안으로 들어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끝을 보고 나면 어느 순간 지고 가는 짐이 훨씬 가벼워져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렇다고 쓸쓸함에 매몰돼서 끝내 허우적거리라는 뜻은 절대 아니고요.


이호준 sagang@mediasoom.co.kr

<저작권자 © 미디어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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